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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가 다 해주니까, 내가 뭐 하는 사람인지 좀 헷갈렸어요AI Agent 2026. 7. 12. 09:00728x90반응형

내가 뭐 하는 사람인지 수요일 오후였어요.
화면 세 군데서 에이전트가 동시에 돌고 있었고, 나는 그냥 의자에 기대 그걸 보고 있었어요.
하나는 코드를 고치고, 하나는 그걸 검사하고, 하나는 결과를 표로 정리하고.
커서들이 알아서 깜빡이고, 줄이 위로 쏟아지고, 내 손은 키보드에서 한 뼘쯤 떨어진 채 무릎 위에 그냥 놓여 있었어요.처음엔 이게 그냥 한가한 오후라서 그런 줄 알았어요.
일이 몰리는 날이면 나도 같이 정신없이 치니까, 오늘은 마침 잠잠한 날이구나 했죠.
그 주에 내가 직접 친 코드가 몇 줄이었나 손가락으로 세어봤어요.
한 줄, 두 줄…
거의 안 세어지더라고요.
대신 띄운 말들은 많았어요.
"이거 해줘", "그건 멈추고 나한테 물어봐", "여기까지만 하고 보고해." 엔터 치고, 기다리고, 또 엔터 치고.
그러다 문득, 무릎 위에 가만히 놓인 그 손이 좀 이상하게 보였어요.
한가한 게 아니라, 할 일이 없는 손이었거든요.손을 놓고 나서야 보이는 거
예전엔 하루가 끝나면 내가 뭘 했는지 분명했어요.
함수 몇 개 짰고, 버그 하나 잡았고, 화면 하나 붙였고.
퇴근할 때 머릿속으로 오늘 만진 것들이 만져지듯이 떠올랐거든요.위임을 본격적으로 한 뒤로는, 하루 끝에 남는 게 대화 로그뿐이에요.
처음엔 내가 게을러진 줄 알았어요.
더 시켜야 하나, 내가 너무 멍하게 보고만 있나 싶어서 그 주 사용량을 한번 들여다봤거든요.
그런데 숫자가 이상했어요.
내가 직접 띄운 메인 에이전트가 쓴 건 열에 하나쯤이고, 나머지는 걔가 다시 부른 하위 에이전트들이 쓴 거였어요.
그 표를 한참 봤어요.
진짜 일은 내가 한 번도 안 들여다본 깊은 데서 벌어지고 있었던 거예요.화면에 뜬 건 깔끔한 표랑 두세 줄 요약뿐이고, 그 밑에서 뭐가 몇 단계로 돌았는지 나는 사실 몰라요.
멍하더라고요.
내가 시켜놓고 내가 모르는 일이라니.
손을 놓고 나니까 그제야 보였어요.
일이 사라진 게 아니라, 내가 안 보이는 데로 들어가버린 거였어요."결정이 필요합니다" 앞에서
그날 오후, 에이전트 하나가 작업하다 딱 멈추더니 나한테 물어왔어요.
같은 걸 두 가지 방식으로 갈 수 있는데, 하나는 지금 빠르고 나중에 손이 가고, 하나는 지금 느리고 나중에 편한 길이라고.
어느 쪽으로 갈지 정해달라고요.
잘 설계해둔 거라 정확히 거기서 알아서 서더라고요.
화면 가운데에 1번, 2번이 떠 있었고, 아래엔 "owner decision required"라는 영어 한 줄이 붙어 있었습니다.답을 몰라서 멈춘 게 아니었어요.
오히려 답이 너무 빨리 나와버려서요.
보자마자 2번이구나 했거든요.
3초면 정할 걸 가지고 나는 손을 키보드 위에 올렸다가, 또 내렸어요.
몇 분 동안 화면 가득 코드를 갈아엎은 건 쟤고, 나는 거기 떠 있는 두 글자 중에 하나 누르는 사람.
손가락 한 번.
그게 내 몫의 전부인가 싶어서, 누르기가 좀 그랬어요.그 한 번이 제일 중요하다는 건 머리로는 알아요.
잘못 누르면 그 몇 분이 통째로 날아가니까.
방향을 정하는 게 손 푸는 것보다 무겁다는 것도요.
근데 머리로 아는 거랑, 의자에 앉아서 손가락 하나 까딱하고 다시 손 내려놓는 건 다르더라고요.
결국 2번을 눌렀어요.
화면은 다시 좌르륵 돌아갔고, 내 손은 또 무릎으로 돌아왔어요.
로그에는 그 선택이owner-selected: path_b로 남았습니다.
무게가 안 느껴졌어요, 그 한 번이.
제일 중요한 일인데 제일 가벼웠어요.자랑할 게 없어진 저녁
저녁에 동생이 밥 먹다가 "요즘 일 어때" 하고 물었어요.
평소 같으면 뭐 만들었다고 한참 떠들었을 텐데, 그날은 뭐라고 해야 할지 모르겠더라고요.
입을 떼려다 말고, 떼려다 말고 했어요.
한참 뜸 들이다가 "어…
그냥…
시켜놨어" 하고 말았어요.
동생은 별생각 없이 "오 편하겠네" 하고 넘어갔고, 대화는 자연스럽게 다른 데로 흘러갔어요.근데 나는 안 넘어가지더라고요.
밥 먹고 설거지하면서 그 "시켜놨어"가 계속 걸렸어요.
시켜놨다는 말이 좀 부끄러웠던 것 같아요.
옛날엔 "이거 짰어"였는데.
만드는 사람에서 시키는 사람으로 넘어왔는데, 그 사이 어딘가에서 내가 뭘 하는 사람인지 라벨이 슬그머니 떨어져나간 느낌이었어요.손으로 짤 땐 적어도 "코딩하는 사람"이었거든요.
누가 물어보면 한 단어로 답이 됐어요.
지금은 뭐라고 불러야 할지 모르겠어요.
그릇에 묻은 거 닦으면서, 시키는 사람을 부르는 멀쩡한 단어를 머릿속으로 뒤졌는데 하나도 안 떠올라서 좀 웃겼어요.
물이 흐르고 있었고, 나는 수세미를 든 채로 가만히 서 있었어요.아직
그날 밤에 노트 앱 열어서 한 줄 적으려다 그만뒀어요.
"내가 아직 쥐고 있는 게—" 까지 치고 커서를 한참 봤는데, 그다음이 안 채워지더라고요.
깜빡이는 커서만 봤어요.
뭔가 있긴 한 것 같은데, 깔끔하게 세 개로 정리되는 그런 건 아니었어요.
정리되면 차라리 마음이 편했을 텐데.지웠어요.
반쯤 친 문장을.
화면 셋이 알아서 돌아가는 소리—라고 해봐야 팬 소리뿐인데—그거 들으면서 그냥 좀 앉아 있었어요.
시킨 사람은 손이 한가하니까.
답이 안 나온 채로, 다음 작업 엔터를 또 쳤어요.728x90반응형'AI Agent'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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