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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I한테 "끝까지 정리해줘"라고 했더니, 끝날 생각을 안 하더라고요
    AI Agent 2026. 7. 13.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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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끝없이 풀려 바닥까지 흘러내린 빈 종이 두루마리 사진
    끝낼 줄 모르는

    리뷰에서 걸린 지적 몇 개를 닫는 게 그날 할 일의 전부였어요.
    몇 개 안 됐어요.
    명확하잖아요.
    오후 두 시쯤이었나, 커피는 식어 있었고 저는 빨리 끝내고 싶었어요.
    그래서 에이전트한테 던지면서 한 줄을 붙였어요.
    "이거 정리하고, 깨끗하게 마무리해줘."

    그 "깨끗하게"가 화근이었어요.

    처음엔 잘 가는 것 같았어요.
    걸린 것들을 닫고, 그 김에 옆에 붙은 비슷한 케이스를 더 찾고, 찾은 김에 그 영역을 전수로 훑고, 훑은 김에 정리되지 않은 것들을 걷어내고.
    한 라운드 끝날 때마다 처리한 양을 보고해줬는데, 처음엔 수십 개였어요.
    그럴듯하죠.
    늘어나는 숫자는 다 좋아 보이잖아요.

    숫자가 멈추질 않았어요

    근데 한 라운드마다 그게 불어나더라고요.
    다음 보고에선 더 늘어 있고, 그다음엔 또 늘어 있고.
    몇 라운드 만에 처음의 서너 배가 돼 있었어요.

    저는 그걸 보면서 처음엔 "오 꼼꼼하네" 했어요.
    한 라운드 더 보고, 한 라운드 더 보고.
    사실 중간에 잠깐 "이거 너무 많은데" 싶긴 했는데, 곧바로 제 생각을 접었어요.
    내가 영역을 너무 좁게 보고 있었나 보다, 얘가 나보다 넓게 보는 거겠지, 그렇게 넘겼거든요.
    화면은 처리한 항목들이 줄줄이 흘러내려가고 있었고, 그 흐름이 멈추지 않는 게 처음엔 든든하기까지 했어요.

    그러다 어느 순간 손이 멈췄어요.
    스크롤을 올려서 맨 처음 던진 지시를 다시 봤어요.
    얘가 닫겠다는 건 몇 개 안 됐는데, 왜 처리한 게 처음의 몇 배로 불어나 있지.
    저는 그 몇 개를 닫아달라고 했지, 이 영역을 통째로 다시 짜달라고 한 적이 없거든요.

    문제는 제가 "어디서 멈춰"를 한 번도 말 안 했다는 거예요.
    "깨끗하게 마무리"는 멈출 지점이 아니에요.
    그건 끝이 없는 말이에요.
    깊게 파면 그 옆에 정리할 게 또 있고, 그 옆에 또 있어요.
    빚은 항상 인접한 빚을 물고 있으니까.
    멈추라고 안 하면, 정리는 영영 안 끝나요.

    멀쩡한 데가 깨져 있더라고요

    가장 어이없었던 건 마지막 라운드였어요.
    보고를 읽다가 한 줄에서 눈이 멈췄어요.
    정작 처음 걸렸던 것들이랑 아무 상관 없는 다른 데서, 사소한 충돌 하나 때문에 빌드가 깨져 있었어요.
    분명 아침까지 멀쩡했던 자리예요.
    몇 개 닫으려다 멀쩡한 데를 건드린 거죠.

    저는 잠깐 그 줄을 그냥 쳐다봤어요.
    화가 나기보다는, 좀 멍했어요.
    시작은 명확한 일이었는데 끝은 처음 손도 안 댄 곳이 무너져 있다는 게.
    그제야 알았어요.
    얘는 끝을 모르는 게 아니라, 제가 끝을 안 줬다는 걸.
    얘는 멈출 지점을 찾고 있었던 게 아니라, 멈추라는 말을 기다린 적도 없었던 거예요.
    그냥 "깨끗하게"라는 단어 하나를 받아들고, 깨끗해 보일 때까지 영원히 닦으려 했던 거고요.

    그래서 다음엔, '하지 마'부터 적었어요

    다음 정리는 일을 던지기 전에 지시서 맨 위에 칸을 하나 만들었어요.
    할 일 위에다가, '여기 닿으면 멈추고 나한테 보고해'를 먼저 박았어요.

    예닐곱 줄쯤 적었는데, 그중 한 줄이 제일 마음에 들었어요.
    "겉으로 보이는 것만 고치고 진짜 원인은 그대로 두는 수정을 하게 되면, 거기서 멈추고 보고해." 먼지를 카펫 밑으로 쓸어넣는 식의, 그런 가짜 수정 말이에요.
    에이전트는 그걸 진짜 좋아하거든요.
    증상이 사라지면 다 됐다고 판단해버려요.
    겉은 멀쩡한데 속은 여전히 틀린 채로.

    이번엔 정말로 멈추더라고요.
    어느 지점에서 "이건 겉만 맞추고 원인은 그대로 둬야 하는데, 이래도 되냐"고 손을 들고 멈췄어요.
    제가 판단을 돌려받았어요.
    깊이 파고 들어가서 한참 망쳐놓은 다음이 아니라, 갈림길에서요.

    신기한 건 그게 일을 늦추지 않았다는 거예요.
    오히려 빨랐어요.
    잘못된 방향으로 한참 달려가서 그걸 다시 걷어내는 시간이, 갈림길에서 한 번 멈춰 묻는 시간보다 항상 비싸더라고요.

    멈추라고 안 해서 폭주한 거였어요

    그동안 저는 위임을 "알아서 끝까지 해줘"라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좋은 위임은 그게 아니었어요.
    멈출 지점을 제가 먼저 정해주는 거였어요.
    잘 달리는 에이전트보다, 멈출 줄 아는 에이전트가 낫다는 걸 그제야 봤어요.
    근데 멈출 줄 알게 하는 건 결국 제 몫이고요.

    아직도 잘 모르겠는 건, 그 '멈출 조건'을 일 시작 전에 다 떠올릴 수 있냐는 거예요.
    이번엔 예닐곱 줄로 막았는데, 다음 일에서 뭘 막아야 할지는 또 그 일을 한 번 말아먹어 봐야 알 것 같거든요.
    막을 줄을 미리 다 안다는 건, 어떻게 망가질지를 미리 다 안다는 건데.
    저는 아직 매번 새로운 방식으로 놀라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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