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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고마워요"라고 AI한테 또 치고 있더라고요
    AI Agent 2026. 7. 11.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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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 책상의 낡은 키보드와 머그, 키 위에 얹힌 손 사진
    키보드 앞의 예의

    엔터를 치기 직전에 손이 멈췄어요.
    입력창을 보니까 "감사합니다, 덕분에 살았어요"라고 쳐놓은 거예요.
    받는 쪽은 사람이 아니라 코드 수정을 도와주던 AI고요.
    새벽 1시였고, 한참 막혀 있던 데이터 파이프라인이 그제야 돌아가서 나도 모르게 그렇게 친 거였어요.
    손가락은 이미 엔터 위에 올라가 있었고요.

    지운 다음에도 좀 신경이 쓰였어요.
    대화창을 위로 쭉 올려보니까, 비슷한 말을 하루 사이에 여러 번 쳐놨더라고요.
    "죄송한데 하나만 더요", "이것까지만 부탁드려요" 같은 거.
    명령어만 치면 되는 도구한테 자꾸 사과를 붙이고 인사를 붙이고 있는 거죠.
    스크롤을 내리는 동안 손이 좀 머쓱했어요.

    명령만 치면 되는데, 자꾸 인사를 붙이고 있었어요

    처음엔 그냥 버릇이려니 했어요.
    사람한테 부탁할 때 쓰던 말투가 손가락에 남아서 그런 거라고.
    그렇게 넘기려고 했어요.

    근데 며칠 지켜보니까 그게 아니더라고요.
    30분 헤매던 걸 AI가 한 방에 풀어주면 진짜로 안도하거든요.
    어깨가 탁 내려가고 "오 됐다" 하고 숨이 놓이는 그 순간에, 사람한테 하듯이 고맙다는 말이 자동으로 손끝에서 나가는 거예요.
    도구한테 감정을 느낀 거죠.
    그걸 알아채고 나니까 좀 더 머쓱했어요.

    화날 때도 비슷하긴 했어요.
    같은 걸 두세 번 물었는데 계속 엉뚱하게 답하면 모니터 보면서 "아 진짜 왜 이래" 하고 입으로 뱉어요.
    옆에 사람도 없는데 혼잣말로요.
    근데 이건 좀 다른 결이라, 일단 인사 쪽부터 안 그러기로 했어요.

    인사를 빼니까 결과를 덜 보게 됐다?

    머쓱한 게 싫어서 인사를 빼봤어요.
    명령어만 딱딱 치자, 어차피 기계인데.
    처음엔 이게 맞는 거 같았어요.
    군더더기 없이 빠르고요.

    그렇게 며칠 건조하게 쳐봤어요.
    그랬더니 묘하게, 결과를 덜 보게 되더라고요.
    한 번은 수정 하나를 시켰는데 "백그라운드에서 진행하고 끝나면 알려드릴게요" 하고 답이 와서, "오 됐네" 하고 바로 다음 명령을 던졌어요.
    근데 한참 뒤에 git status를 쳐보니까 실제로는 아무것도 안 바뀌어 있었어요.
    "했어요"는 주장이지 증거가 아닌데.
    평소 같으면 "이거 진짜 적용된 거 맞아요?" 하고 한 번 되물었을 걸, 그날은 답이 온 것만 보고 그냥 넘어간 거예요.

    처음엔 그날 한 번 방심한 거겠거니 했어요.
    근데 그게 한 번이 아니더라고요.
    또 한 번은 출력이 화면상으론 멀쩡해 보여서 그대로 받아 쓰려다, 뒤늦게 파일을 열어보니 절반이 빈칸이었어요.
    이건 아직도 왜 그랬는지 잘 모르겠어요.
    에러도 안 떴고, 다시 똑같이 시켜봤더니 그땐 또 멀쩡하게 나왔거든요.
    그래서 그날 뭐가 어긋났던 건지는 그냥 못 잡은 채로 넘어갔어요.
    찜찜한데 재현이 안 되니까요.

    왜 인사를 뺐더니 이런 게 늘었을까 한참 생각했어요.
    솔직히 아직도 깔끔하게는 설명 못 하겠어요.
    그냥 짐작인데, "고맙다"고 치려면 그 답이 진짜 도움이 됐는지를 먼저 판단하게 되잖아요.
    도움이 됐어야 고맙지.
    인사가 그 판단을 한 박자 끼워 넣고 있었던 건가 싶기도 하고요.
    근데 이것도 그날 기분 탓일 수도 있어서, 확신은 안 서요.
    그냥 인사를 뺀 며칠 동안 헛것을 두 번 붙잡았다는 사실만 남은 거예요.

    고마워요 앞에 한 줄

    다시 "고마워요"를 치기 시작했어요.
    대신 그 앞에 한 줄을 붙여요.
    "이거 진짜 적용된 거 맞죠?
    확인했어요?" 그리고 답이 정말 맞는 걸 내 눈으로 본 다음에 고맙다고 쳐요.
    순서가 그렇게 바뀌었어요.

    웃긴 건, 건조하게 명령만 칠 때보다 이렇게 할 때 결과를 더 꼼꼼히 본다는 거예요.
    왜 그런지는 모르겠어요.
    그냥 그날그날 나한테 먹히는 방식인 거고요.

    오늘 새벽에도 또 "감사합니다"를 반쯤 쳐놨더라고요.
    손이 멈칫하다가, 커서를 위로 올려서 "확인했어요?" 한 줄을 먼저 끼워 넣었어요.
    그러고는 답이 오기를 기다리면서, 식어버린 커피를 한 모금 마셨어요.
    화면엔 커서만 깜빡이고 있었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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