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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I가 처음 "이건 제가 정할 자리가 아니에요" 했을 때, 이상하게 마음이 놓였어요
    AI Agent 2026. 7. 13.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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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분한 책상 위에 노트를 덮고 펜을 내려놓은 사진
    정하지 않기로 한 자리

    화면에 한 줄이 떠 있었어요.
    "즉흥 땜질은 피하겠습니다.
    여기서는 결정이 필요합니다."

    커피 한 잔 내리러 갔다가 돌아온 참이었어요.
    수정 하나 맡겨두고 갔으니까, 당연히 끝나 있을 줄 알았거든요.
    늘 그랬으니까.
    자리에 앉으면서 손은 이미 다음 일로 넘어갈 준비를 하고 있었고요.
    근데 커서가 안 깜빡이고 그대로 멈춰 있더라고요.
    처음엔 멈춘 줄도 몰랐어요.
    또 뭔가 길게 떠들어놨겠거니, 스크롤을 쭉 내려서 맨 아래 "완료" 줄만 찾았거든요.
    근데 그게 없는 거예요.
    초록불도 없고요.

    그제야 위로 다시 올라가 읽었어요.
    입력이 비어서 들어오는 경우 하나를 두고 그냥 서 있더라고요.
    비면 0으로 채울지, 그 줄을 건너뛸지, 아니면 막고 에러를 낼지.
    결정을 안 하고 멈춰서.

    처음엔 솔직히 김이 좀 샜어요.
    아니 이걸 왜 안 하고 멈춰, 싶어서.
    식기 전에 마시려고 들고 온 커피를 책상에 내려놓는데, 이거 결국 내가 손대야 하는 거 아니야, 하는 생각부터 들었거든요.

    "다 됐어요"가 제일 안 미더워진 이유

    생각해보면 저를 골탕 먹인 건 항상 멈춘 쪽이 아니었어요.
    끝까지 밀고 간 쪽이었죠.

    검사 다 통과했다고, 초록불 떴다고, "문제없습니다" 하고 자신만만하게 넘긴 것들이요.
    그래놓고 막상 열어보면 어딘가 어긋나 있던 거.
    도구를 바꿔도 똑같았어요.
    어떤 건 절반만 해놓고 다 됐다 그러고, 어떤 건 묻지도 않고 제멋대로 끼워 맞춰놨더라고요.
    틀린 걸 틀린 줄도 모르고 확신에 차 있는 게, 제일 무서웠어요.

    그래서 어느 순간부터 "다 됐어요"라는 말이 제일 안 미더웠어요.
    매끄러운 보고가 올라오면 오히려 어디가 거짓말일까 먼저 뒤지게 됐고요.
    결과물 받을 때마다 드는 첫 생각이 "이번엔 또 어디서 거짓말했지"였으니까.
    마우스 휠을 위아래로 굴리면서, 멀쩡해 보이는 줄들 사이에 숨어 있을 한 줄을 찾는 게 일이었어요.

    근데 이 녀석은 멈췄어요

    이번 건 달랐어요.

    처음엔 그냥 일을 덜 한 줄 알았어요.
    게을러서 멈춘 건가, 아니면 또 어디서 막혀서 핑계 대는 건가 싶었거든요.
    그래서 멈춘 그 줄을 한 번 더 읽었어요.
    보통 같으면 셋 중 하나를 그럴듯하게 골라 그냥 박아넣고 지나갔을 자리였거든요.
    비면 0으로 채운다, 끝.
    일단 돌아가게는 만드는 거죠.
    당장은 초록불도 떴을 거고요.
    근데 그걸 안 하고, "여기는 제가 정할 자리가 아닌 것 같다"는 식으로 멈춰서 저한테 넘겼어요.

    거기서 좀 멈칫했어요.
    게을러서 멈춘 게 아니라, 멈춰야 할 데를 알고 멈춘 거였거든요.

    비면 0으로 채우느냐, 줄을 건너뛰느냐, 막아버리느냐에 따라 그 아래로 쌓이는 숫자가 통째로 달라지거든요.
    기존 코드가 빈 입력을 여태 어떻게 다뤄왔는지는 제가 더 잘 아니까, 그 기본값은 제가 정해야 맞는 거였어요.
    얘는 그 자리를 알았던 거예요.
    자기가 결정하면 안 되는 자리요.
    한참을 그 한 줄만 들여다봤어요.

    그 순간에 김 샜던 게 가라앉으면서, 이상하게 마음이 놓였어요.
    빨리 끝낸 것도 아니고, 오히려 제 손이 한 번 더 가게 만든 건데도요.
    멈출 줄 안다는 건, 적어도 모르는 걸 안다고 우기진 않는다는 뜻이니까요.

    5분 박을 걸, 반나절 걷어내요

    빈 입력은 막고 에러를 내라고 — 기존 코드가 여태 그래왔던 쪽으로 — 기본값을 정해서 다시 던졌어요.
    그제야 임시 우회 없이 뿌리부터 고치더라고요.

    나중에 가만 따져봤어요.
    만약 얘가 멋대로 "비면 0" 쪽으로 박아놨으면, 그 0이 그 아래 합계랑 평균에 섞여서 한참 뒤 엉뚱한 숫자로 나왔을 거예요.
    그러면 그제야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서, 어디서부터 0이 끼었는지 찾느라 반나절은 날렸겠죠.
    멈추는 데 든 한 턴이 5분이라면, 그 0을 도로 걷어내는 건 반나절인 거.
    한참 뒤에 터졌으면 원인 찾느라 또 하루가 갔을 거고요.

    좀 웃긴 게, 저는 빠른 걸 좋아하는 사람이거든요.
    뭐든 일단 돌아가게 만들고 보는 쪽.
    근데 이날은 느린 쪽이 더 좋았어요.

    근데 커피는 식어 있더라고요

    기본값 한 줄 적어서 던져주고, 책상에 내려뒀던 커피를 들었는데 이미 식어 있더라고요.
    멈춘 그 한 줄 들여다보는 동안 다 식은 거죠.

    데우러 가서 전자레인지 도는 거 보면서, 빨리 끝났으면 좋았을 텐데 왜 더 좋았지, 하고 좀 멍하니 서 있었어요.
    30초 남았다고 숫자가 줄어드는 걸 보는데, 머릿속은 자꾸 그 멈춰 있던 커서로 돌아가고요.

    다음에 또 화면에 초록불 뜨고 "다 됐어요" 올라오면, 저는 그걸 또 멈춰준 이 한 줄처럼 믿어버릴까요.
    아마 그러겠죠.
    그래놓고 또 어딘가 0이 끼었나 뒤지고 있겠죠, 데운 커피 들고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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