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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코드는 빨리 나오는데, 결정은 더 느려졌어요
    AI Agent 2026. 7. 6.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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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낡은 체스판 위에서 멈칫하는 손이 든 폰 하나 사진
    결정은 더 느려졌다

    문서 한 묶음을 텍스트로 뽑아야 했어요.
    그림밖에 없는 페이지뿐이라 손으로는 답이 없었어요.
    한 장씩 베껴 치자니 분량이 수백 페이지였고요.
    그래서 여러 추출 도구를 한꺼번에 붙여서 돌렸어요.
    처음엔 이게 신의 한 수인 줄 알았어요.
    한 번에 여러 벌을 받아두면 그중 제일 깨끗한 걸 고르기만 하면 되니까요.
    결과물 여러 벌이 거의 동시에 화면에 떨어졌어요.

    거기서부터가 문제였어요.
    기계가 줄인 건 출력 시간이었고, 제가 떠안은 건 결정 시간이었습니다.
    둘은 같은 시간이 아니더라고요.

    결과가 한꺼번에 떨어졌는데, 손이 안 움직였어요

    예전 같으면 한 개 돌려놓고 진행 막대 보다가 커피 마시러 갈 시간에, 여러 개가 다 와 있었어요.
    빨라진 건 맞아요.
    의자에 앉기도 전에 끝나 있었으니까요.
    근데 화면에 같은 페이지가 여러 버전으로 나란히 떠 있으니까, 제가 그 앞에서 그냥 멈췄어요.
    마우스 휠에 손가락만 얹어놓고 한참을 안 굴렸어요.

    처음엔 그냥 위에서부터 훑으면 금방 답이 나올 줄 알았어요.
    A 창 보고, B 창 보고, 더 나은 쪽 클릭.
    그렇게 끝낼 셈이었거든요.
    근데 A는 이 문단을 깔끔하게 뽑았는데 표를 통째로 날렸어요.
    B는 표는 살렸는데 제목 줄에서 두 글자를 흘렸고요.
    또 다른 건 다 비슷한데 줄바꿈이 한 군데 이상하게 끼어 있었어요.
    셋 다 어딘가는 맞고 어딘가는 틀렸어요.

    표 한 칸에 적어보니 더 분명했어요.
    A: 본문 좋음, 표 없음.
    B: 표 좋음, 제목 오타.
    C: 둘 다 중간, 줄바꿈 이상함.
    보기 좋게 정리하면 선택이 쉬워질 줄 알았는데, 오히려 어느 결함을 감수할지 제게 다시 물어보는 표가 됐어요.

    그러니까 "더 나은 쪽 클릭"이 안 됐어요.
    더 나은 쪽이 없었거든요.
    한 페이지 비교하는 데 몇 분이 갔어요.
    한 페이지에요.
    분량은 수백 페이지였고요.
    화면 오른쪽 아래 시계를 봤는데, 첫 페이지 하나 붙잡고 있는 사이에 십 분이 지나 있더라고요.

    만드는 데 1분 걸린 걸 고르는 데 10분을 쓰고 있더라고요.

    점수를 매겨봤더니, 승자가 페이지마다 뒤집혔어요

    눈으로는 도저히 못 고르겠어서, 페이지마다 점수라도 매겨보자고 했어요.
    원문이랑 글자 얼마나 맞나 대충 비율로 본 거라, 점수라기도 좀 뭐해요.
    자릿수까지 믿을 건 못 되고요.
    그래도 숫자로 줄 세우면 적어도 고민은 끝날 줄 알았어요.
    그래야 손이 풀릴 것 같았거든요.

    그런데 매겨놓고 보니까 더 황당했어요.
    어떤 페이지는 A가 B를 크게 앞섰어요.
    그런가 보다, 역시 A구나 하고 다음 페이지로 넘어갔어요.
    그랬더니 이번엔 거꾸로였어요.
    A가 뚝 떨어지고 B가 멀찍이 앞서 있었어요.
    그 다음 페이지는 둘이 비등비등해서 점수만 봐선 또 못 고르겠고요.
    한 줄로 줄 세워지는 게 아니라, 페이지를 넘길 때마다 1등이 바뀌었어요.

    여기서 좀 멍해졌어요.
    점수표를 만들면 답이 나올 줄 알았는데, 점수표가 오히려 "답이 하나가 아니다"를 더 또렷하게 보여준 거예요.
    "제일 좋은 도구 하나 정하자"가 애초에 틀린 질문이었던 거죠.
    전체 우승자를 뽑으면, 그 우승자가 약한 페이지에서는 그대로 손해가 났어요.
    우승자를 정하는 순간, 그 우승자가 못 하는 페이지를 떠안기로 약속하는 거였어요.

    결국 손이 많이 가는 페이지들은 A, B 섞어서 받았어요.
    표 있는 페이지는 B, 본문만 빽빽한 페이지는 A, 이런 식으로요.
    깔끔하게 "이거다" 하고 끝낸 게 아니라, 칸마다 다르게 손으로 채워 넣은 거예요.
    선택지가 여러 개로 늘어난 만큼, 골라야 하는 횟수도 그만큼 같이 늘었어요.

    그리고 품질 1등을 안 썼어요

    웃긴 건 따로 있어요.
    샘플로 보면 품질 1등은 분명히 한 도구였어요.
    점수가 제일 깔끔했어요.
    표도 잘 살리고 글자도 안 흘리고요.
    근데 전체 추출에는 그 1등을 안 썼어요.

    1등이 전체를 그 자리에서 끝낼 만큼 빠르질 않았거든요.
    몇 장 돌려보니 페이지 한 장에 시간이 꽤 걸렸고, 수백 페이지로 환산하면 그날 안에 끝날 그림이 아니었어요.
    2등은 품질이 충분히 괜찮으면서, 전체를 그날 안에 안정적으로 다 돌렸어요.
    그래서 2등을 썼어요.
    품질로 진 놈을 일부러 골라 쓴 거죠.

    이걸 적어두면서 좀 이상한 기분이 들었어요.
    나중에 누가 "왜 제일 좋은 거 안 썼냐"고 물으면, 그 자리에서 바로 대답할 자신이 없더라고요.
    "빠른 게 더 중요했어요"라고 말하면 되긴 하는데, 그 한 줄로 정리되기엔 그날 제가 망설인 시간이 너무 길었거든요.
    그래서 표에 칸을 두 개로 나눴어요.
    품질로 이긴 놈, 실제로 쓴 놈.
    따로요.
    나중에 저한테 설명해야 할 사람이 결국 저라서요.

    빨라진 만큼 어딘가가 느려졌는데, 그게 어딘지

    도구가 후보를 여러 개 뽑아주니까 일이 빨라진 줄 알았어요.
    근데 만드는 시간이 여럿으로 쪼개진 게 아니더라고요.
    고르는 시간이 그 빈자리를 메우면서 늘어났어요.
    후보 하나가 추가될 때마다 봐야 할 짝이 늘었고, 짝이 늘 때마다 제 머릿속이 한 번 더 멈췄어요.
    추출은 기계가 했는데, 고르는 건 끝까지 제 몫이었어요.

    그날 결국 다 뽑긴 했어요.
    시간으로 치면 예전보다 빨랐는지 느렸는지, 사실 아직도 모르겠어요.
    추출은 분명히 빨랐고 고르는 건 분명히 느렸는데, 둘을 합치면 어느 쪽이 이긴 건지 계산이 안 돼요.

    다음에 또 여러 개를 붙여놓고 그 앞에 앉으면, 그때는 좀 덜 멈출까요.
    그건 잘 모르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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