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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대화가 길어지니까, AI가 방금 한 얘기를 다시 묻더라고요
    AI Agent 2026. 7. 4.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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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같은 줄이 두 번 적힌 노트와 펜 사진
    방금 한 얘길 또

    두 시간쯤 같이 붙어 있던 참이었어요.
    처음에 "이건 이렇게 가기로 하죠"라고 못을 박아둔 게 하나 있었거든요.
    키 이름을 옛날 거 그대로 두고, 누락된 값은 기본값으로 살리지 말고 비워둔 채로 가자고.
    그걸 정하는 데만 20분쯤 썼어요.
    서로 한 번씩 반대 의견도 내봤고, 그러다 결국 비워두는 쪽으로 합의를 본 거였죠.
    그러고는 한참 다른 걸 만졌어요.
    위쪽 어딘가에 그 결정이 멀쩡히 적혀 있으니까, 당연히 그건 끝난 얘기라고 생각했고요.

    다시 그 부분으로 돌아왔는데 화면에 이렇게 떴어요.

    "이 필드, 누락되면 어떻게 처리할까요?
    기본값을 넣을까요, 아니면 비워둘까요?"

    손이 멈췄어요.
    방금 그거 한 시간 반 전에 정했잖아요.

    분명 위에 적혀 있는데

    처음엔 제가 잘못 봤나 했어요.
    비슷한 다른 필드를 묻는 건가, 내가 화면을 헷갈린 건가.
    위로 스크롤을 한참 올렸어요.
    마우스 휠을 몇 번이나 굴렸는지, 손가락이 다 뻐근하더라고요.
    그러다 찾았죠.
    분명히 있었어요.
    "비워두는 걸로 갑니다, 기본값 0이 진짜 0이랑 누락을 못 구분하게 만드니까." 제가 친 문장이고, AI도 "네, 그 방향이 맞습니다" 하고 받았던 자리였어요.
    이 필드가 누락이면, 한참 뒤에 그 값을 세는 쪽에서 0을 진짜 0으로 잘못 집계하거든요.
    그래서 20분이나 붙들고 비워두기로 정한 거였고요.

    근데 지금 그걸 다시 묻고 있는 거예요.
    그것도 똑같은 두 선택지를 나란히 놓고서.
    마치 우리가 그 얘기를 한 적이 없는 것처럼.

    좀 어이가 없어서, 일부러 짧게 답해봤어요.
    "아까 정한 대로." 그랬더니 "어떤 결정을 말씀하시는 걸까요?
    다시 한 번 알려주시면 반영하겠습니다." 이러는 거예요.
    아까가 언제인지를 모르는 거죠.
    그 '아까'가 자기 머릿속에서 통째로 날아간 거예요.
    화면 위쪽엔 글자가 다 살아 있는데, 정작 그 글자를 못 읽는 거였어요.

    그래서 같은 걸 또 설명했다

    그때 알았어요.
    대화가 어느 길이를 넘으면, 앞쪽이 조용히 잘려나간다는 걸.
    새 내용을 받으려고 오래된 내용을 버리는 건데, 하필 그 버려진 칸에 우리가 제일 공들여 정한 게 들어 있었던 거예요.
    화면엔 그냥 멀쩡하게 다 보이는데, 정작 일하는 쪽은 그 앞부분을 안 보고 있었던 거죠.

    문제는 이게 한 번이 아니었다는 거예요.
    그날 같은 결정을 세 번 다시 설명했어요.
    두 번째까지는 그러려니 했는데, 세 번째에 좀 짜증이 나더라고요.
    매번 비슷하게 답하는데, 미묘하게 달라요.
    한 번은 비워두자더니, 한 번은 "안전하게 기본값을 넣는 게 낫지 않을까요?" 하고 반대로 권하기도 했고요.
    제가 안 잡았으면 그대로 들어갈 뻔했어요.

    사실 그 세 번 중에 한 번은, 제가 답을 잘못 줬어요.
    짜증이 나서 "그냥 기본값으로 해" 하고 쳐버린 거예요.
    정한 거랑 반대로요.
    엔터를 누르고 화면에 그 한 줄이 뜬 걸 보는 순간, 아 이게 아니지 싶어서 다시 지웠는데, 그 순간엔 저도 제가 뭘 정했었는지 가물가물했어요.
    키보드에서 손 떼고, 또 위로 스크롤을 올려서 제가 쓴 문장을 확인하고 나서야, 아 비워두기로 했었지, 했으니까요.
    한 시간 반 만에 저까지 헷갈리고 있었던 거예요.

    그래서 결국 별도 메모를 하나 열었어요.
    우리가 정한 것들만 두 줄로.
    키 이름 그대로 / 누락은 비움.
    그러고는 그 두 줄을 대화가 길어질 때마다 다시 붙여 넣었어요.
    사람이 회의록을 다시 읽어주는 것처럼요.
    기억을 못 하는 쪽한테 기억을 떠먹여 주고 있는 거였죠.

    떠먹여 줘도 안심이 안 되더라고요

    근데 그 메모를 붙여 넣어도 완전히 마음이 놓이진 않았어요.
    두 줄을 다시 줬는데도, 한 번은 "키 이름을 새 걸로 바꿔드릴까요?" 하고 또 물었거든요.
    분명 첫 줄에 '그대로'라고 써놨는데.
    자기가 받은 메모랑 자기가 하는 질문이 따로 노는 순간이 있는 거예요.
    메모를 코앞에 들이밀어도 그러니까, 이게 안 본 건지 보고도 그러는 건지 헷갈리더라고요.

    그날 밤에 제일 이상했던 건, 제가 어느 순간부터 그 메모를 점점 길게 쓰고 있었다는 거예요.
    처음엔 두 줄이었는데 나중엔 열 줄이 넘었어요.
    키 이름 규칙, 누락 처리, 그 아래에 예외 케이스 두어 개, 또 그 아래에 "이건 이미 정함" 하고 표시까지.
    다 까먹을까 봐 자꾸 더 적게 되더라고요.
    한 번은 메모를 통째로 붙여 넣고 나서, 정작 내가 시키려던 게 뭐였는지 잠깐 까먹기도 했어요.
    메모 정리하다가요.
    누가 누구 기억을 챙겨주는 건지 잠깐 헷갈렸어요.

    아직도 그 적정선을 모르겠어요.
    얼마나 자주 붙여 넣어야 안 까먹는지, 어디까지가 한 번에 들고 있을 수 있는 양인지.
    열 줄을 매번 붙이는 게 맞는 건지, 그러다 보면 또 뭔가 빠뜨리는 건지.
    그날은 그냥 메모를 한 번 더 붙여 넣고, 다음 줄을 쳤어요.
    다음엔 또 뭘 다시 물어볼지는 모른 채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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