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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퇴근하고도 머릿속으로 프롬프트를 짜고 있더라고요
    AI Agent 2026. 7. 4. 0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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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밤 기차 창가 좌석, 흐릿한 도시 불빛과 손과 폰 사진
    퇴근 후에도

    머리에 샴푸를 칠하다 말고 손이 멈췄어요.
    거품이 이마로 흘러내리는데, 제가 속으로 이러고 있는 거예요.
    "아 아까 그거, '실제 파일을 먼저 읽고 나서 고치라'고 한 줄 더 박았어야 했는데." 낮에 시켰던 일이 어딘가 어긋났던 게 그제야 떠오른 거죠.
    처음엔 그냥 물이 차가워서 멈춘 줄 알았어요.
    손등으로 수도꼭지를 돌리려다, 아 이게 아니구나 했어요.
    멈춘 건 손이 아니라 머리였더라고요.
    샤워기 물 맞으면서, 손은 비누칠하고 있는데 머리는 회사 모니터 앞에 가 있었어요.

    웃긴 건 그게 일을 하는 것도 아니라는 거예요.
    노트북도 없고, 적어둘 데도 없잖아요.
    그냥 머릿속에서 문장을 다듬고 있는 거예요.
    "이렇게 시킬걸.
    아니, 이게 더 낫나." 답도 안 나오는 걸 거품 흘러내리는 채로 굴리고 있었어요.
    발밑으로 물이 빠지는 소리가 한참 들리고 나서야, 내가 지금 뭐 하고 있나 싶더라고요.

    한 줄을 어떻게 적느냐에 일이 달라지니까

    언제부터 이랬나 더듬어 봤는데, AI한테 일을 본격적으로 맡기고부터였어요.

    예전엔 일이 안 풀리면 그냥 '내일 더 봐야지' 하고 덮었거든요.
    근데 요즘은 결이 달라요.
    코드 자체보다, 그걸 어떻게 말로 시키느냐에 결과가 통째로 갈리니까요.
    같은 일도 "이거 고쳐줘"라고 하면 엉뚱한 데를 건드리고, "이 파일 먼저 읽고, 이 줄만, 이 조건일 때만 고쳐줘"라고 하면 딱 맞게 와요.
    그러니까 머리가 자꾸 그 한 줄을 손보려고 드는 거예요.
    퇴근을 했는데도.

    처음엔 이게 그냥 일 욕심인 줄 알았어요.
    일 안 끝난 게 마음에 걸리는 거랑 비슷한 거겠거니.
    근데 가만 보니 좀 다르더라고요.
    일은 다 끝났거든요.
    끝난 일을, 그것도 결과가 잘 나온 일을, '더 짧게 시킬 수 있었는데' 하면서 머리가 계속 줄을 긋고 있었어요.
    끝난 일을 붙들고 있는 게 아니라, 끝난 방식이 마음에 안 차서 붙들고 있는 거였어요.

    며칠 전엔 자려고 누웠다가 휴대폰 메모장에 두 줄을 쳤어요.
    "그거 시킬 때 — 추측하지 말고 못 찾으면 못 찾았다고 말하라고 먼저 깔기." 불 끄고 누운 채로요.
    화면 불빛이 천장에 네모나게 비치던 게 기억나요.
    아침에 보니까 무슨 말인지 저도 반쯤 까먹었더라고요.
    근데 그 순간엔 안 적으면 못 잘 것 같았어요.

    말을 하다 말고 머리가 딴 데로 갔어요

    제일 머쓱했던 건 사람이랑 있을 때였어요.

    지난 주말에 아내가 뭐 얘기를 하고 있었는데, 제가 중간에 "어어" 하고 흘려듣고 있었던 거예요.
    아내가 "지금 딴생각하지" 하더라고요.
    들켰죠.
    처음엔 그냥 멍하니 있었던 거라고 둘러대려고 했어요.
    근데 둘러대다 말고 저도 좀 멈칫했어요.
    멍하니 있었던 게 아니었거든요.
    그 순간 제 머릿속에서 돌아가고 있던 건, 부끄럽지만, 낮에 AI한테 줬던 지시를 어떻게 다시 쓸까였어요.
    사람이 앞에서 말하는데, 저는 기계한테 보낼 문장을 고치고 있었던 거예요.

    미안하다고 했는데, 솔직히 그 다음에도 한 번 더 그랬어요.
    같은 자리에서, 같은 대화 중에요.
    이건 좀 문제다 싶더라고요.
    일이 안 끝나서가 아니라, 일이 머리에서 안 꺼져서요.
    끝났는데도 안 꺼지는 거.
    그게 다르더라고요.
    예전엔 퇴근하면 회사가 멀어졌는데, 요즘은 회사가 아니라 그 '문장'이 안 멀어져요.
    어디든 따라와요.

    메모장에 '내일 할 것'이라고 적어두면

    그래서 요즘은 떠오르면 일단 메모장에 던져놓고 닫아요.
    "내일 할 것" 폴더에요.
    머리에서 끄집어내서 글자로 박아두면, 신기하게 조금은 놓여요.
    적어두지 않으면 까먹을까 봐 계속 붙들고 있는 거더라고요.
    적어두면, 까먹어도 되니까.
    그게 그렇게 마음이 편해지는지 몰랐어요.

    근데 이게 다 풀린 건 아니에요.
    어제도 길 걷다가 편의점 불빛 보는데 또 한 줄이 떠올랐고, 또 휴대폰을 꺼냈거든요.
    신호 바뀐 줄도 모르고 횡단보도 앞에 서서 엄지로 치고 있었어요.
    옆 사람이 먼저 건너가는 발소리에 고개를 들었는데, 신호등은 벌써 빨간색이더라고요.
    메모장에 적어두면 머리가 놓인다며.
    근데 적으려고 또 휴대폰을 꺼낸 거잖아요.
    그러니까 끄집어낸 게 아니라 그냥 옮겨 담고 있는 건가 싶기도 하고.
    이게 메모하는 습관이 좋아진 건지, 일이 머리에서 더 안 나가게 된 건지는 아직도 잘 모르겠어요.
    둘 다인 것 같기도 하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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