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BOUT ME

-

Today
-
Yesterday
-
Total
-
  • 밤마다 터지는 게 내 탓인 줄 알았어요
    AI Agent 2026. 7. 26. 21:00
    728x90
    반응형

    흐린 낮 창가의 책상과 빈 의자 사진
    밤마다 터지는 게 내 탓인 줄 알았어요

    버그는 꼭 자기 전에 터져요.
    불 끄고 누우려는데 알림이 뜨거나, 양치하다가 폰을 들여다보거나.
    낮에는 멀쩡히 돌아가던 게 하필 하루를 접으려는 그 타이밍에 안 된다고 올라와요.
    그날도 그랬어요.
    침대에 반쯤 누운 채로 노트북을 다시 열었고, 또 밤이네, 하는 한숨이 먼저 나왔어요.
    화면 하나가 안 뜬다는 거였어요.
    별로 안 어려워 보였어요.
    그게 더 문제였고요.

    처음 든 생각은 내 탓이었어요.
    밤이라 머리가 안 돌아가나.
    낮에 멀쩡하던 게 왜 꼭 이 시간에 보이지.
    집중력이 떨어져서 못 보고 넘긴 걸 지금에서야 보는 건가.
    커피라도 내릴까 하다가, 이 시간에 마시면 진짜 못 잘 거 같아서 그냥 미지근한 물 한 컵 떠 왔어요.
    그러고 화면 앞에 다시 앉았어요.

    내가 아는 자리만 물어봤어요

    AI한테 물었어요.
    근데 내가 물어본 건 내가 의심하는 자리였어요.
    "여기 이 부분이 이상한 거 같은데 한번 봐줘." 평소에 내가 알고 있던, 손에 익은 영역.
    어차피 거기서 틀렸겠거니 하고 딱 그만큼만 물어본 거예요.

    AI는 성실하게 답했어요.
    내가 가리킨 데를 같이 들여다보고, 거기 있을 법한 원인을 짚어줬어요.
    여기 고치면 될 거라고.
    고친 거 같았어요.
    새로고침하니까 잘 뜨길래, 됐다 싶어 노트북을 덮으려 했어요.
    근데 조금 있다 또 같은 게 터졌어요.
    두 번째도, 세 번째도.
    나는 계속 같은 자리만 다시 들이밀었고요.
    내가 아는 게 거기까지였으니까, 질문도 거기서 못 벗어났어요.

    한 번에 알아들으면 다행이고, 두세 번이면 그러려니 하는데, 네 번째로 똑같은 걸 또 못 풀면 그때는 딴 데를 의심해야 하는 거였어요.
    그게 제 나름의 신호거든요.
    같은 데서 네 번 막히면 문제는 거기가 아니라는 거.
    근데 그날의 나는 네 번째에도 같은 데만 또 가리키고 있었어요.
    같은 질문을 표현만 살짝 바꿔서.
    졸리니까 더 그랬던 거 같아요.
    새로운 데를 의심하려면 머리를 한 번 더 굴려야 하는데, 그 시간엔 그게 제일 하기 싫었거든요.

    어디 볼지 네가 골라봐

    몇 번을 헛돌고 나서, 좀 자포자기하는 심정으로 질문을 바꿨어요.
    "어디가 문제인지 모르겠으니까, 어디부터 봐야 할지 네가 정해봐." 내가 자리를 짚어주는 걸 멈춘 거예요.
    그게 좀 지는 기분이긴 했어요.
    내가 봐야 할 걸 AI한테 떠넘기는 것 같아서.

    그랬더니 내가 물어볼 생각도 못 한 자리를 짚더라고요.
    내 의심 영역 바깥, 솔직히 내가 잘 모르는 쪽이었어요.
    거기였어요.
    밤이라서도 아니고, 집중력이 떨어져서도 아니었어요.
    내가 아는 게 좁아서, 그 좁은 데다 AI를 묶어놓고 "여기서 찾아" 하고 있었던 거예요.

    생각해보면 당연한 건데.
    AI는 나보다 더 많이 알고, 모르는 건 웹에서 금방 찾아 와서 이해하잖아요.
    그걸 내 손바닥만 한 영역 안에 가둬놓고, 답 안 나온다고 혼자 밤에 한숨 쉬고 있었던 거예요.
    차라리 처음부터 "넌 어디가 의심돼?" 하고 풀어줬으면 두 시간은 아꼈을 텐데.

    머쓱한 채로 닫았어요

    화가 난 건 아니었어요.
    그냥 좀 머쓱했어요.
    내가 뭐 하고 있었나 싶고.
    고쳐놓고 나니까 별것도 아닌 자리였는데, 그 별것 아닌 데를 못 찾은 게 내 실력이 부족해서가 아니라 그냥 내가 거길 안 물어봐서였다는 게, 묘하게 더 기운 빠졌어요.
    모르는 거면 차라리 핑계라도 대지.
    알 수 있었는데 안 물어본 거라.

    시계를 보니까 한 시가 넘어 있었어요.
    처음 화면 켰을 때가 열한 시쯤이었으니까, 별것 아닌 자리 하나 못 찾고 두 시간을 내 좁은 영역 안에서만 뱅뱅 돈 거예요.
    그 두 시간 동안 AI는 내가 시키는 데만 계속 들여다봤어요.
    더 볼 수 있었는데.
    내가 안 시켰으니까 안 본 거고요.

    그날 이후로 묻는 순서를 좀 바꿨어요.
    내가 의심하는 데를 먼저 던지기 전에, "넌 어디부터 보겠냐"를 먼저 물어봐요.
    항상 그게 맞는 건 아니에요.
    엉뚱한 데를 짚을 때도 있고.
    근데 적어도 내 좁은 영역에 갇혀서 같은 자리만 네 번 들이미는 일은 좀 줄었어요.
    그거 하나는 확실히.

    근데 며칠 못 갔어요

    이 묻는 방식, 며칠은 잘 먹혔어요.
    그러다 요구사항이 바뀌었어요.
    한 줄.
    그 한 줄 바뀌니까 그 밑이 다 바뀌더라고요.
    어디부터 보냐고 묻고 자시고 할 것도 없이, 봐야 할 데 자체가 통째로 달라졌어요.
    정리해뒀던 게 다시 어질러졌고요.
    받은 데이터 한 덩어리 정리해서 내보내는 그 짧은 동안만 깔끔하지, 화면이고 뒷단이고 사람 마음 바뀌면 같이 출렁여요.
    그래서 그 그럴듯한 깨달음도 그때뿐이었어요.

    요즘도 밤에 뭐 터지면 한숨부터 나와요.
    그래도 같은 자리 네 번 들이밀기 전에 한 번은 멈춰요.
    졸리면 그것도 까먹지만요.

    728x90
    반응형
Designed by Tistor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