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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AI한테 일 시키던 말투가, 후배한테 그대로 나왔어요
    AI Agent 2026. 7. 9.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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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은 회의 테이블 양쪽의 머그 두 개와 의자 사진
    말투가 새어 나갔다

    점심 먹고 들어와서 후배한테 한마디 했는데, 말을 끝내고 나서 제가 좀 놀랐어요.
    "이거 봐줄래요?"가 아니라 "이 표에서 합계 줄이 어제 숫자랑 다른지만 봐주세요.
    다르면 어느 칸인지랑, 안 다르면 그냥 '같음' 한 단어로요." 이렇게 나가더라고요.

    후배가 자판 위에 올려놨던 손을 멈추고 잠깐 저를 쳐다봤어요.
    0.5초쯤?
    평소에 제가 그렇게 안 말했거든요.
    그러고는 "아, 네.
    같으면 그냥 같음이요?" 하고 되물었어요.
    그 되묻는 한 박자에 제가 방금 뭘 했는지가 들어 있었습니다.
    입에서 나간 문장이 제 것 같지가 않았어요.
    누가 제 입을 빌려 쓴 것처럼.

    "알아서 잘 봐주세요"가 안 나와요

    원래 저는 부탁을 두루뭉술하게 했어요.
    "한번 쭉 봐주세요", "이상한 거 있으면 알려주세요".
    그게 예의라고 생각했어요.
    상대한테 재량을 주는 거니까.
    답을 정해놓고 시키는 건 좀 무례하다고 여겼고요.

    근데 요 몇 주 동안 제가 일하는 시간의 절반쯤은 AI한테 일을 시키는 거였어요.
    그러면서 한 가지를 진짜 비싸게 배웠어요.

    한번은 큰 표 하나를 통째로 "검토해줘"라고 던졌어요.
    처음엔 잘 됐다고 생각했어요.
    돌아온 답이 술술 읽혔거든요.
    두 문단짜리에 말투도 친절하고, "전반적으로 무리는 없어 보입니다.
    다만 일부 확인이 필요한 항목이 있습니다" 이렇게 깔끔하게 정리돼 있었어요.
    그래서 됐다 싶어서, 그 말을 믿고 그날 그 표를 넘겼어요.

    다음 날 아침에 커피 들고 자리에 앉아서 표를 다시 여는데, 합계가 한 줄 어긋나 있더라고요.
    한참을 봤어요.
    어디서 틀어진 건가 싶어서.
    그러다 깨달았어요.
    AI가 "일부 항목"이라고 두루뭉술하게 가리킨 게 바로 그 줄이었던 거예요.
    친절한 두 문단 안에 정답이 숨어 있었는데, 저는 "어딘데?"를 안 물어봤던 거죠.
    그거 다시 맞추느라 오전을 통째로 날렸어요.
    같은 표를 처음부터 끝까지 두 번 읽은 셈이에요.

    그래서 시킬 때 형식을 박기 시작했어요.
    통과인지 보류인지 한 단어로 먼저, 보류면 정확히 어느 줄 어느 칸인지, 그리고 내가 뭘 하면 풀리는지.
    모호하게 끝내는 걸 결과물로 인정 안 하기로 한 거예요.

    그게 효과가 좋았어요.
    너무 좋았어요.

    그 형식이, 사람한테 그대로 나갔어요

    문제는 그 말버릇이 몸에 배어버렸다는 거예요.

    회의에서도 그래요.
    예전 같으면 "이 부분 같이 고민해봐요" 했을 걸, "지금 결정해야 하는 건 둘 중 하나예요.
    A로 가면 다음 주에 끝나고 B면 그다음 주예요.
    둘 중 뭐 고를지만 정해주시면 돼요." 이렇게 말해요.
    빙빙 도는 시간이 확 줄었어요.
    회의가 짧아졌어요.
    사람들이 "오늘 빨리 끝났네" 하고 나가는 게 좋았어요.

    근데 그날 후배 표정을 보고 알았어요.
    사람은 AI가 아니라는 걸.

    후배는 "같음" 한 단어를 보내달라는 부탁 앞에서 잠깐 멈칫했어요.
    입을 살짝 벌렸다가 그냥 다물더라고요.
    뭔가 말하려다 만 얼굴.
    제가 자기를 못 믿어서 답안지를 좁혀준 건가, 하는 표정이었어요.
    사실은 정반대였거든요.
    저는 그 친구가 표 전체를 붙들고 한 시간씩 들여다보지 않게, 시간을 아껴주려고 그렇게 말한 건데.
    근데 그 의도가 말투에는 안 실리더라고요.
    효율만 또박또박 실려서 나갔어요.

    "어느 칸인지만"이라고 잘라버리면

    며칠 더 지켜봤는데, 이게 좀 곤란해요.

    AI한테 "추측 금지, 모르면 모른다고 해"라고 박는 건 맞는 일이에요.
    AI는 빈칸을 만나면 그럴듯한 걸로 메우거든요.
    어제 그 합계 줄이 딱 그거였어요.
    자기도 어딘지 모르면서 "일부 항목"이라고 자신 있게 채워 넣은 거.
    그래서 빈칸을 안 주는 게 제 일이 됐어요.

    근데 그 후배는 빈칸이 없으니까 입을 안 열더라고요.
    "어느 칸인지만"이라고 잘라버렸더니, 그 친구가 "근데 이 표 자체가 좀 이상한데요"라고 말할 자리가 없어진 거예요.
    제가 안 물어본 거니까.
    처음엔 그 친구가 조용한 게 그냥 집중하는 줄 알았어요.
    근데 며칠을 보니까, 제가 또박또박 잘라 말한 날마다 그 친구가 딱 시킨 것만 하고 입을 닫더라고요.
    AI한테는 그 자리를 없애는 게 정답이었는데, 사람한테는...
    그게 정답이 아닌 것 같은데, 뭐가 정답인지는 아직 잘 모르겠어요.

    어제 합계 줄 같은 실수는 AI가 빈칸을 채워서 났는데, 사람은 빈칸을 안 주면 채울 게 없어지는 거잖아요.
    같은 빈칸인데 한쪽은 막아야 하고 한쪽은 둬야 하고.
    머리로는 알겠는데 입은 둘을 구분 못 하고 똑같이 박더라고요.
    손이 키보드 쓰듯이 사람한테도 명령어를 치는 느낌이랄까.

    저는 명확하게 말하는 법을 배운 줄 알았어요.
    근데 그 후배 앞에서는, 제가 명확한 건지 그냥 답을 미리 정해놓고 그 친구한테 받아적게 한 건지 저도 잘 모르겠더라고요.

    어제는 "편하게 봐주세요" 했는데

    그날 이후로 부탁할 때 한 박자 멈춰요.
    이건 형식을 박아야 하는 일인가, 아니면 그냥 "한번 봐주세요" 하고 그 사람한테 맡겨야 하는 일인가.

    근데 솔직히 매번 헷갈려요.
    어떤 부탁은 또박또박 박는 게 맞고 어떤 부탁은 그러면 안 되는데, 멈춰서 고른다고 골라지는 게 아니더라고요.
    입에서 먼저 나가버려요.
    둘 다 같은 입에서 나오는 말이라 더 그래요.

    어제는 후배한테 "이거 그냥 편하게 봐주세요" 했는데, 말하고 나니까 이게 진짜 편하게 보라는 건지 제가 일부러 풀어준 건지 저도 모르겠더라고요.
    그 친구는 "넵" 하고 갔는데, 그게 진짜 편해서 넵인지 어제처럼 멈칫한 다음 넵인지는 못 봤어요.
    그 표정을 봤어야 했는데, 그땐 제 모니터를 보고 있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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