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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삭제 ㄱㄱ'이라 쳤는데 AI가 설명을 채워 넣었다
    AI Agent 2026. 7. 22. 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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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흐린 낮 창가의 책상과 빈 의자 사진
    '삭제 ㄱㄱ'이라 쳤는데 AI가 설명을 채워 넣었다

    화면 한쪽에 숫자 표가 떠 있었어요.
    줄마다 항목 이름이 있고, 이름 오른쪽에 작은 동그라미 아이콘이 붙어 있어서 누르면 "이게 뭐다" 하고 설명 카드가 뜨는 그런 표였거든요.
    위에서부터 죽 내려가며 보면 줄마다 그 동그라미가 박혀 있었어요.
    그런데 딱 한 줄만 그게 없었어요.
    바로 윗줄이랑 이름이 거의 똑같은데, 끝에 괄호 안 단어 하나만 다른 줄이었고요.
    윗줄은 누르면 설명이 뜨는데, 이 줄은 누를 데 자체가 없으니 뭘 뜻하는지 확인할 길이 아예 막혀 있었어요.

    게다가 숫자가 윗줄이랑 완전히 똑같았어요.
    79.0, 69.0, 73.3.
    세 칸 다 한 글자도 안 다르게요.
    그러니까 더 거슬렸죠.
    위에 멀쩡히 설명 붙은 줄이 있는데, 이건 이름만 살짝 바꿔서 똑같은 숫자를 한 번 더 보여주는 꼴이잖아요.
    쓸모는 모르겠는데, 그 쓸모를 물어볼 데조차 없는 거예요.
    위아래를 번갈아 한참 봐도 숫자는 그대로고요.

    그래서 저는 채팅창에 던졌어요.
    "이거 뭔가요?
    삭제 ㄱㄱ."

    시키는 대로 안 하고 설명만 붙여놨더라

    엔터 치고 잠깐 다른 거 보다 돌아왔는데, 그 줄이 그대로 있더라고요.
    안 지워져 있었어요.

    처음엔 어, 또 멋대로 판단했네 싶었어요.
    지우라니까 안 지웠으니까.
    일을 시키다 보면 이런 순간이 제일 부아가 치밀거든요.
    분명 명령했는데 자기 식으로 해석해서 딴 데로 새는 거.

    근데 결과를 보니까 좀 달랐어요.
    삭제는 안 하고, 대신 그 줄에 없던 설명을 채워 넣었더라고요.
    윗줄에만 붙어 있던 그 작은 동그라미가, 이제 이 줄에도 생겨 있었어요.
    눌러보니까 이게 무슨 값인지, 어떻게 계산하는 건지, 그리고 어떤 경우엔 윗줄이랑 똑같이 나온다는 주의 문구까지 떴고요.
    그러고는 한 줄 더 있었어요.
    정 안 보고 싶으면 아예 안 보이게 숨기는 것도 된다고.
    숨김은 2차 선택지로만 슬쩍 내밀어 놓고요.

    그 순간엔 솔직히 더 짜증났어요.
    아니 지우라니까.
    왜 자꾸 안 지우고 옵션을 늘려.

    숫자가 왜 똑같았는지를 알고 나서

    오기로 그게 뭐 하는 줄인지 직접 까봤어요.
    어디서 만들어지는 값이고, 윗줄이랑 뭐가 다른지를요.
    솔직히 그냥 넘어가도 됐는데, 안 지워진 게 거슬려서 끝까지 가봤어요.

    알고 보니까 그 줄은 윗줄에다가 보정을 한 번 더 얹은 값이었어요.
    조건이 갖춰지면 위아래로 조금씩 어긋나게 나오는 게 정상인 거고요.
    그런데 보정에 필요한 정보가 빠진 경우엔, 어쩔 수 없이 그냥 윗줄 값을 그대로 가져다 쓰게 돼 있었어요.
    내가 본 화면이 마침 딱 그 경우였던 거예요.
    그래서 두 줄이 글자 하나 안 틀리고 똑같았던 거였고요.
    쓸모없어서 똑같았던 게 아니라, 보여줄 재료가 없어서 잠깐 닮아 보였던 거죠.

    그러니까 그 줄은 함부로 지우면 안 되는, 원래 표준으로 들어가야 하는 항목이었어요.
    내가 본 그 순간에만 우연히 쌍둥이처럼 보였을 뿐이지.
    '삭제 ㄱㄱ' 누른 대로 진짜 지워졌으면, 보정 정보가 있는 다른 화면에선 멀쩡히 일하던 줄이 통째로 사라질 뻔했어요.
    나만 그 화면을 보는 게 아니니까요.
    삭제가 정답인 줄 알았던 칸은 사실 설명이 비어 있던 칸이었고, 그날 AI가 한 일은 명령 불복종이 아니라 빠진 질문을 먼저 복원한 쪽에 가까웠어요.

    여기서 등골이 좀 서늘했어요.
    내가 친 건 '삭제'였는데, 내 진짜 상태는 '이게 뭔지 몰라서 거슬림'이었거든요.
    그 둘은 완전히 다른 거였어요.
    글자만 보면 지우라는 거고, 속을 보면 설명해 달라는 거였죠.
    안 지운 게 맞았던 거예요.

    명령은 던졌지만 의도는 안 적었어요

    곰곰이 생각해 보니, '삭제 ㄱㄱ'은 스펙이 아니었어요.
    그냥 그 순간 감정의 출력이었지.
    진짜 원한 건 "이게 뭔지 알려줘" 아니면 "안 보이게 해줘"였는데, 마침 그 단어가 제일 먼저 튀어나온 거였어요.

    짧게 내지른 한 줄에는 의도가 안 담겨요.
    명령은 결과만 가리키지, 왜 그 말이 나왔는지는 안에 안 들어 있거든요.
    보통은 '왜 이 말이 나왔나'를 푸는 게 사람 몫인데, 이번엔 그걸 한 번 대신 풀어준 셈이었어요.
    그래서 안 지운 거고요.

    근데 이게 한 줄짜리 일이 아니었어요

    기분이 묘해서, 그럼 다른 줄들은 멀쩡한가 싶어 표를 다시 천천히 훑었어요.
    그랬더니 같은 표 안에, 설명 아이콘이 똑같이 빠진 줄이 또 하나 있더라고요.
    이번엔 아무도 안 건드린 채로요.

    거기서 그치질 않았어요.
    비슷한 시기에 올라온 다른 화면들에서도, "이게 뭔지 설명이 없다"는 똑같은 종류의 제보가 여섯 건 넘게 쌓여 있었어요.
    항목만 다를 뿐 전부 같은 빠짐이었어요.
    처음에 표를 만들 때 어떤 항목엔 설명을 등록하고 어떤 항목엔 빼먹은 건데, 설명이 비면 아이콘 자체가 안 뜨게 만들어져 있어서, 그냥 조용히 '누를 데 없는 줄'로 나가버린 거였죠.

    그러니까 내가 처음에 짜증냈던 그 한 줄은, 빙산의 한 칸이었던 거예요.
    한 칸을 채우고 나니까 같은 모양의 빈 칸이 화면 여기저기서 보이기 시작했어요.
    그날 채운 건 딱 한 줄이었고, 바로 옆 줄은 아직도 누를 데가 없어요.
    그건 아무도 짜증을 안 냈으니까 그대로 남은 거고요.
    다른 화면들 것까지 합치면 언제 다 채울지도 모르겠고요.

    지금도 가끔 "삭제 ㄱㄱ" 같은 한 줄을 던지려다 멈칫해요.
    내가 지우라는 건지, 그냥 이게 뭔지 몰라서 거슬린다는 건지 — 손가락이 먼저 알고 있을 때가 더 많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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